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토니오 이노키 (문단 편집) == 상세 == [[일본]] [[프로레슬링]]의 전설이자 [[프로레슬링]]을 통해 부와 명예, 인맥, 권력을 모두 쥐고 [[일본 참의원]]까지 한 프로레슬링 역사상 가장 성공한 인물로 언급된다. 탄광산업을 경영하는 유복한 집안에 태어났으나, 이노키가 5살이라는 어린 나이 때 아버지가 사망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제2차 세계 대전]] 뒤 가업이 도산하여 [[브라질]]로 이주하게 되고, 이후 농장에서 가혹한 노동을 하는 동시에 투포환 선수로 활동하다가 마침 브라질을 방문한 [[역도산]]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된다. 당시 역도산의 지시로 '[[귀국자녀]]'가 아닌 '''[[일본계 브라질인]]'''이라는 컨셉으로 활동하게 된다. '안토니오'[* [[포르투갈어]] 발음은 안토니'''우'''다.]라는 링네임도 브라질인 이미지를 위해서 붙인 것이다. 프로 데뷔 전에는 역도산과 친분이 깊은 [[재일교포]] [[야쿠자]] [[정건영]]의 [[보디가드]]로도 일한 적도 있다. 데뷔전은 1960년 9월, 상대는 오오키 킨타로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김일(프로레슬러)|김일]]로, 시합은 김일의 완승으로 끝났다. [[파일:external/f533b718afd3d5362cffda221858fe76a7f056906038655eee10510c427b6aee.jpg|width=300]] 연습생 시절 역도산에게 늘 구박받던 안토니오 이노키에게 김일은 선배로서 자상하게 대해줬다고 하며 이후 이노키와 김일, [[자이언트 바바]]는 역도산의 3대 제자로 꼽히며, 이 세 명은 각각 신일본 프로레슬링, 일본 프로레슬링,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전성기를 이끄는 공로자가 된다.[* 이들보다 사형으로 '토요노보리'라는 선수가 있었고 사실 당시에는 이 사람이 역도산의 후계자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도박중독자였기 때문에 단체 재산을 도박으로 날려먹었고 현재는 완전히 일본 프로레슬링계의 흑역사로 [[기록말살형|사실상 지워져 버렸다]].] 일본 프로레슬링 시절, 이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은 니혼TV와 TV아사히에서 중계를 하고 있었다. 니혼TV가 먼저 방송을 시작했기 때문에 니혼TV쪽에 좀 더 공을 기울여 자이언트 바바는 니혼TV에서만 나오고, TV아사히 쪽에는 안토니오 이노키 등이 출연했다. 하지만 1971년에 일본 프로레슬링 경영진과 대립을 했는데 당초 안토니오 이노키와 함께 나서기로 했던 프로레슬러들이 모두 이탈하는 바람에 이노키 혼자 반기를 든 꼴이 되어 해고당한다. 이 때문에 독자노선으로 나가서 1972년 1월 13일에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개양하게 된다. 라이벌 [[자이언트 바바]]의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같은해 10월에 개양했다. 양대 단체에 인기가 모두 빠져나가 경영난에 빠진 일본 프로레슬링은 1973년 4월 1일에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합병을 추진했지만, 김일 등의 반대로 실패하고 몇몇 선수를 뽑아오는 데 그쳤다. 4월 6일에는 TV 아사히와 방영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하여 단체를 반석에 올려놓았다. 일본 극우당인 [[일본의 마음]](日本の心)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안토니오 이노키가 북한을 방문했을 때 북한 정치인들하고는 야한 단어(下ネタ)를 쓰며 외교해야 한다며 북한 정치인이 '사실 북한 미사일은 미국에 향해있지 일본에 향해있는것이 아니니 걱정을 말라'라는 대화의 대답에 '북한에는 미인이 많으니 우리 일본인들의 미사일(거시기)는 북한에 향해있다'라고 막말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http://virates.com/entertainment/264552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